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자신이 신비한 세계를 경험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개혁교회는 이 책이 사도 바울이 쓴 것인지 확실하지 않기에, 정경으로 확정할 때에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수 세기를 지나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의 이름을 빌려서 "바울의 묵시록"이라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처럼,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인가 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의 묵시록"은 온갖 신비한 현상들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책이 개혁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성경의 충족성’(充足性, Sufficiency of the Bible)을 부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많이 어두워진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영적 분별력이 흐려지면 성도들이 현세적인 복과 쾌락을 즐기려는 기복주의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 책이 비록 사도 바울에 의해 씌여진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구도자들이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에는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진실된 삶을 살아가려는 성도들에게 영적 세계를 동경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대해서,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유익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성경만 정확히 알아도 우리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부족하지 않을 것임을 고백합니다.
이 책은 개혁교회에서는 위경(Pseudepigrapha)으로 분류됩니다.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성경의 위인들의 이름을 저자로 붙여놓은 책들인데, 이를 테면, 에녹서, 열 두 족장의 유언서, 엘리야의 묵시록, 모세의 유언서, 아담의 묵시록 등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내세운 이유는,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인들 혹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저자로 내세워 자신들이 쓴 책의 권위가 높아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제2성전 시대에 유대교에서 유행했던 방식으로 솔로몬의 지혜서, 므낫세의 기도, 예레미야의 편지, 바룩 등과 같은 외경들도 이러한 방법을 썼습니다. 오늘날은 저자의 이름을 거짓으로 붙이면,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만, 당시 유대교에서는 책을 쓰는 하나의 관습이었습니다.
사실, 위조한 경전이라는 뜻인 위경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용된 관습 때문에 적절한 용어가 나올 때까지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위경에 속하는 책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썼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쓰거나 개작한 책 가운데, 바울의 묵시록도 있습니다.